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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며 생각하며 ♡ (080807) (입추[入秋], 칠석[七夕])



입추(立秋) 아니죠!  입추(入秋)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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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며 생각하며 ♡ (080807) (입추, 칠석)
♡ 살며 생각하며 ♡
2008. 8. 7. (목)
(음) 戊子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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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도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것이 입추이다.

입추라 해도 더위는 여전하여 '잔서(늦더위)'가 계속된다. 이때쯤이면 김장용 무·배추를 심기 시작한다.
벼논에서는 목도열병과 벼멸구를 막기 위해 농약을 친다. 특히, 이 시기에는 태풍과 장마가 오면 자주 발생하는 목도열병과 고온이 지속되면 주로 발생하는 벼멸구의 피해가 심하다. 목도열병은 일반벼에 더 심하게 나타난다.
이 시기는 출수기로 쌀감수와 직결되기 때문에 신경을 써서 방제해야 한다. 잠깐 실수로 잘 지은 농사를 망칠수 있기 때문이다.
또 뜻밖의 복병, 사리가 도사리고 있다. 사리는 한 달에 음력 2-4일과 17-19일 두 차례 생기며 사리 가운데 우리나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때가 음력 7월 보름 전후인데 백중 부근에 사리 현상이 드높다 하여 '백중사리'라고 부른다.
바다의 수면이 올라가는 사리 현상은 태양과 달의 위치가 지구-달-태양 또는 태양-달-지구일 때 태양과 달의 인력이 합쳐져 지구의 바닷물을 끌어당겨 생긴다. 이로 인해 바닷물의 수위가 최고가 되어 낮은 지대 농작물에 피해를 끼친다.
이때는 우리나라 서남해안의 해수면 상승으로 인천, 안산, 평택, 보령, 군산, 목포, 여수, 광양, 통영, 부산 등 저지대는 침수피해를 입게 된다. 특히 평택지방은 바닷물 높이가 9미터 53센티미터까지 올라가 애써 가꾼 농작물이 온통 잠겨 농민을 깊은 시름에 빠뜨리기도 한다.

볍씨는 크게 일반벼와 통일벼가 있었다.
일반벼는 기존 재래종을 약간 개량한 것으로 밥맛이 좋고 매우 차졌다. 또 볏짚의 길이가 길어 소의 사료로부터 초가지붕, 가마니나 거적, 새끼, 노끈 재료등으로 다양하게 이용할수 있다. 그러나 소출이 떨어지고 병충해에 약한것이 흠이다.
여기에 비해 통일벼는 볍씨가 일반벼에 비해 크고 소출도 많으나 쌀이 푸석푸석해 밥맛이 없고 밥을 해 놓으면 찰기가 적어 우리 입맛에는 잘 맞지 않았다. 또 볏짚의 길이가 짧고 억세며, 쉽게 서리에 고꾸라져 사료용과 장작 대용의 연료 이외에는 잘 쓸수가 없었다. 그래서 기존 농가에서는 일반미, 그 중에서도 속칭 '아끼바리(원명은 아끼바레)'라 불린 쌀을 많이 심었다. 차지고 밥맛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에 의해 추진된 '녹색혁명·산미증산 계획'에 따라 신품종 볍씨가 대대적으로 바뀌는 일대 혁명이 있었다.
10월 유신을 통해 영구집권의 토대를 공고히 한 박정희는 그의 혁명 유업처럼 볍씨의 이름도 '유신벼'라 했다. 유신정부는 농민들에게 유신벼를 강요했다. 허나 농민들은 밥맛이 좋고, 그간 입맛에 길들여진 일반벼를 선호했다. 그러나 유신정부가 그리 호락한 정부이던가?
군마다, 면마다, 가구마다 할당된 목표치가 정해지고 공무원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방문하여 독려·감독하는 성화를 부렸다. 못자리에서부터 통일벼를 뿌리지 않으면 일반벼 볍씨를 빼앗아갈 정도였다. 이런 공무원들의 등쌀에 못 이겨 통일벼가 전국적으로 심어졌다.
마을 회관 벽면에 새겨진 '자급자족'의 기지처럼 '증산'이 첫 번째 목표였다.
"오천 년 보리고개 가난을 몰아내고…"란 노래를 틀어 대며 군마다 면마다 '증산왕'을 선정하고 쌀 자급을 더더욱 독려했다. 그러나 박정희의 몰락처럼 "잘 살아 보세"의 구호가 슬그머니 내려졌다.
시간이 흐르고. 보리고개의 배고픔에서 벗어나는 것이 소원이던 시절을 지나 양보다 질을 따지게 되자 그 흔하던 유신벼는 논에서, 밥상에서 소리 소문없이 사라져 버렸다.
밥맛이 없어 생활보호대상자들의 배급용이나 군인들의 군량미로 죄수들의 가다밥으로, 그리고 없는 집에서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일반미 내다 팔고 되팔아 먹던 그 벼.
안남미라 홀대 받으며 눈물밥을 먹게 했던 통일벼의 왕자 '유신벼'는 유신정권이 무너지듯 그렇게 우리의 뇌리에서, 들판에서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이제 이 땅에서 유신벼 찾기란 천연기념물 찾기보다 어렵게 되어 버렸다.



- 음력 7월 7일에 행해지는 행사

음력 7월 7일은 칠석(七夕)이라고 부르며, 견우성(牽牛星)과 직녀성(織女星)이 오작교(烏鵲橋)를 통해 1년중 단 한차례 만난다는 전설이 있는 날이다. 칠석날에는 은하수에 까치와 까마귀가 오작교를 놓고, 동쪽의 견우성과 서쪽의 직녀성이 만나 슬픔과 기쁨의 눈물을 흘리느라 대체로 날이 흐리고, 비가 온다고 한다.

칠월 칠석날에는 주로 비가 오거나 흐린 경우가 많은데, 칠석날 저녁에 비가 내리면 견우와 직녀가 상봉하는 기쁨의 눈물이라고 하며, 이튿날 새벽에 비가 오면 이별의 슬픈 눈물이라고 한다. 또 이 무렵은 바쁜 농사일이 어느 정도 끝나고 더위도 한풀 꺽이는 때라 여름 내내 입었던 옷을 빨아 햇볕에 말리는데 이날 옷과 책을 말리면 일 년 내내 좀을 먹거나 상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 이 밖에도 칠석날은 가진 고추 등 햇것을 맛보는 날이었다.

이 날이 지나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밀가루 음식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각 가정에서는 음식으로 마지막으로 밀 음식인 밀국수와 밀전병을 만들고 또 햇과일을 차린다. 잉어를 재료로 음식을 만들며 오이 김치나 복숭아, 수박으로 과일 화채를 만들어 먹는다.

부녀자들은 마당에 바느질 차비와 맛있는 음식을 차려 놓고 문인들은 술잔을 교환하면서 두 별을 제목으로 시를 지었다. 또한 볕이 좋을 때 옷과 책을 말린다. 집집마다 우물을 퍼내어 청결히 한 다음 시루떡을 해서 우물에 두고 칠석제 또는 칠성제라고 해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떠놓고 가족들의 무병장수를 빈다.

이날 처녀들은 직녀성에 바느질 솜씨가 늘기를 빌고 소년들은 학업성취를 빌었으니 칠석날의 견우성과 직녀성은 젊은이로 하여금 소원을 이루게 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또한 처녀들은 별을 보며 바느질 솜씨가 좋게 해달라고 빈다. 마을에서는 서낭당 등에서 자녀의 무병과 장수를 빌기도 한다. 장마가 지난 때라 그 동안 축축해진 옷과 책을 볕에 쬐는 거풍(擧風)의 풍속이 있다.

먼 옛날 옥황상제에게는 직녀라는 예쁜 딸이 하나 있었는데 하루 종일 베짜는 일만 하며 살고 있었다. 직녀가 짠 옷감은 정말 눈부실 만큼 아름다웠다. 어느날 직녀는 베 짜는 일을 잠시 중단하고 창밖을 내려다 보다가 무심코 은하수 건너편의 청년을 보고 첫 눈에 반해 곧 옥황상제에게 달려가 그 청년과 결혼을 허락해달라고 하자 옥황상제는 견우가 아주 마음에 들었던 터라 곧 혼인을 시켜 주었다. 결혼후 두 사람은 너무 사랑해 잠시도 떨어져있으려 하지 않아 둘 다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하늘 나라 사람들은 옷이 부족해지고 견우의 소와 양들은 병에 걸려 앓고 농작물들도 말라죽어 하늘 나라가 혼란스러워지자 땅의 세상도 어지러워졌다. 옥황상제는 몹시 화가나 직녀는 서쪽에서 베를 짜고 견우는 은하수 동쪽에서 살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견우와 직녀는 용서를 빌었지만 옥황상제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대신 일년에 딱 한번 음력 칠월 칠일 한번 만날 수 있게 해주었는데 이것이 바로 칠석날이다. 그러나 견우와 직녀가 일 년을 기다려 만나기 위해 나왔을 때에는 은하수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어 만나지 못했는데 두 사람이 슬프게 우는 모습을 본 까마귀와 까치들은 너무 불쌍해 곧 서로의 몸을 이어 다리를 만들어 두 사람을 만날 수 있게 해주었는데 그 다리를 오작교라고 한다.

견우성과 직녀성의 두 별은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동서로 갈라져 있었다. 두 별은 서로 사랑을 하지만 마주 바라만 볼 뿐 은하수 때문에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은하수에 다리만 있으면 자주 상봉하여 사랑을 나눌 수가 있겠으나 다리가 없는 것이 늘 원망스러웠다.

견우와 직녀의 딱한 사정을 알고 해마다 칠석날이 되면 지상에 있는 까치와 까마귀가 하늘로 올라가 은하수에 다리를 놓으니, 이것이 오작교(烏鵲橋)이다.

견우와 직녀는 1년에 한 번 소원을 이룬다. 그러나 사랑의 회포를 다 풀기도 전에 새벽 닭이 울고 동쪽이 밝으면 다시 이별을 하지 않으면 안되고 또 다시 1년을 떨어져서 보내야 한다.

칠석날 지상에는 까마귀와 까치는 한 마리도 없으며, 어쩌다 있는 것은 병들어 하늘에 가서 오작교를 놓는데 참여 못하는 것들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