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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든...

coffee" 커피에대한 기원(커피값 가장 비싼 도시는 모스크바 [조인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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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디의 설
 
커피에 대한 기원에 대한 것은 여러 개 있습니다. 16세기 이전의 커피 역사에 대해서는 뒷받침할 만한 확실한 문헌은 없지만, 알려져 있는 몇 가지 설을 말하고자 합니다.

월리엄 유커스가 지은 "커피의 모든 것"에 나오는 커피의 발견에 얽힌 전설입니다. 아주 오랜 옛날 (7세기경으로 추정)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에서 양치기 소년 칼디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칼디는 자기가 기르고 있는 염소들이 흥분하여 이리저리 뛰어다니더니 그날 밤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동안 얌전했던 염소들이 갑작스레 흥분한 모습을 본 칼디는 그 뒤로 염소들의 행동을 주의깊게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염소들이 주변에 있는 어떤 나무의 빨간 열매를 따 먹었을 때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 게 되었습니다. 그 열매를 먹어본 칼디는 자신도 신기하게 기분이 상쾌해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칼디는 곧 이러한 사실을 가까운 이슬람 사원 승려에게 알렸고 이에 승려는 여러 가지 실험을 거쳐 그 빨간 열매에 잠을 쫓는 효과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 뒤로 커피는 곧 여러 사원으로 퍼져나갔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고 합니다.
오라르 설
 
커피에 대한 기원에 대한 것은 여러 개 있습니다. 16세기 이전의 커피 역사에 대해서는 뒷받침할 만한 확실한 문헌은 없지만, 알려져 있는 몇 가지 설을 말하고자 합니다.

칼디의 전설과는 달리 아라비아의 이슬람교 승려인 셰이크 오라르가 커피를 처음 마신 뒤 전파되었다는 오라르의 발견설이 있습니다. 이 설에 따르면 1258년 아라비아의 승려 셰이크 오라르가 문책을 당해 아라비아의 오사 산으로 추방된 뒤 배고픔에 못 이겨 산 속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다가 우연히 한 마리의 새가 빨간 열매를 쪼아먹는 모습을 보고 그 역시 열매를 따 먹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오라르는 이 열매가 피로를 풀고 심신에 활력을 되살아나게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 뒤로부터 그는 그 열매를 이용하여 많은 환자들을 구제하는데 성공, 결국 그 동안의 죄가 풀리고 성자로서 존경받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빨간 열매가 바로 커피 열매였던 것입니다.

이런 관계로 아랍어의 "kaffa" 즉 힘을 의미하는 단어로 불려지게 되었고 그것이 영국에 전래된 후에는 coffee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희랍어 "Kaweh" 에서 힘과 정열에서 비롯된 말도 있습니다. 터키에서는 "Kahve" 로 불렸으며, 이후 유럽각지에서 비슷하게 파생되면서 불리워졌습니다.

커피(Coffee)뜻하는 아랍어 카와(qahwa)가 원래는 술(wine)이란 뜻으로 쓰였기 때문에 아마도 잘못 해석한 것으로 풀이하는 곳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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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근거
 
커피에 대한 기원에 대한 것은 여러 개 있습니다. 16세기 이전의 커피 역사에 대해서는 뒷받침할 만한 확실한 문헌은 없지만, 알려져 있는 몇 가지 설을 말하고자 합니다.

설이 아닌, 역사적 근거를 따진다면, 이 다음 이야기를 읽으면 될 것입니다. 이디오피아 원산의 커피 나무의 열매는 본 고장에서는 음료보다는 곡류나 두류와 같이 분쇄하여 식량으로 사용되었고 점차로 커피 나무가 아라비아 각 지방으로 분포되어 재배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11세기 초 아라비아의 라제스(A.B.Lazes)와 아비세나 (Avicenna) 등의 의학자들이 커피는 위장의 수축을 부드럽게 하여 주는 반면 각성제로 좋은 약이라고 말했습니다. 그후부터 하나의 기호 음료로 전환되었으며, 급기야는 페르시아, 아라비아 전역에서 애음하게 되었습니다.

각국에 대중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한 기원은 1517년 터어키의 세림 1세가 이집트에 원정차 방문하였다가 커피의 애음풍습을 터키에 들여오면서부터였으며, 1554년에는 콘스탄티노플에 화려한 카네스 커피 숍(Kanes Coffee shop)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 카네스 커피 숍은 당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으며, 콘스탄티노플을 관광하는 관광객들은 항상 이곳에 들려 이국적인 정취와 기이한 커피 맛에 매료된 나머지 각자 자기의 나라에 그 풍습을 전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커피는 급속도로 세계 각국에 전파되기 시작하였으며 유럽 전역에는 1573년 독일의 의사 라볼프(L.Lavolf)의 기행문에 의해 처음으로 커피가 소개되었습니다.
유럽에서부터 시작된 커피문화
 
사라센 제국이 분열되고 있을 무렵 유럽인들은 십자군을 조직하여 이슬람 세계로 원정을 보냅니다. 이때 십자군 병사들은 처음으로 이슬람교 지역에서 자유롭게 커피를 향유하게 되지만 유럽에서는 이교도의 음료라 하여 자유롭게 마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군원정 이후 르네상스시대로 접어들면서 근대정신에 눈을 뜬 유럽인들은 종교적 교리로 인하여 이교도의 음료로 낙인찍힌 커피에 대해 관대해 집니다. 르네상스라는 문예부흥운동으로 근대정신에 눈뜨게 되었고, 종교교리에 묶여 있던 커피에 대해서도 관대해졌습니다. 더욱이 당시의 시인, 화가 등 커피를 예술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는데, 그야말로 커피는 '시인에게 영감을, 음악가에게 악상을, 철학자에게 진리를 ,그리고 정치가에게 평화를 전한다'고 찬미할 정도였습니다. 예로 교황 클레멘트 8세는 커피금지령을 내려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커피를 먹은 후 커피의 맛에 감복하여 커피에 세례를 내렸다고 합니다. 이것은 커피가 전 유럽으로 퍼지는 데 큰 힘을 발휘하게 되었습니다.

17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기독교인들도 마음놓고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자 1645년 베니스에서 처음으로 커피하우스가 생겼습니다. 이후 1687년에는 군인이었던 게오르그 콜스치스키(Georg Kolschitsky)가 비엔나에 커피하우스를 열었는데,그는 비엔나를 점령하고 있던 터키군을 물리친 공로로 터키가 남겨 놓고 간 커피 500포대를 받았던 것입니다. 아랍풍습에 익숙했던 그는 커피 추출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터키를 물리친 기념으로 이슬람 제국의 상징인 초승달 모양의 케이크를 커피와 함께 손님들에게 내놓기도 했는데, 오늘날 케이크를 곁들여 커피를 마시는 것은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1650년경 에닌젤이라는 이름의 커피하우스가 옥스퍼드에서 문을 열었습니다. 영국에서의 커피하우스는 스미르나에서 커피맛을 보고 돌아온 한 영국 상인과 그에게 커피를 끓여준 하인 파스카 로제에 의해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영국에서의 커피 마시는 일이 유행하게 되자 이 상인은 1652년에 콘힐의 외곽지대 에 있는 세인트 미셸 산책로에 오두막을 하나 세우고 그 하인으로 하여금 일반인들에게 커피를 팔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17세기 말 런던에는 무려 2천 개 이상의 커피 하우스가 있었고 그 중에는 이따금 꽤 특색 있는 커피 하우스들도 있었습니다. 어떤 커피 하우스 안에서는 최신의 해외 소식들을 접할 수 있고 이민 티켓이나 보험 증서, 주식을 살 수도 있었으며 때로는 흑인, 이상한 새들 또는 식물의 경매에 입찰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또한 변호사,의사,아일랜드인,군인,노름꾼,성직자, 그리고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커피 하우스도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카페는 그 번창속도가 영국의 커피하우스에 훨씬 미치지 못했습니다. 최초의 카페는 1643년에 파리에서 문을 열었지만 커피마시기가 유행하기 시작한때는 1669년 르방의 한 대사가 부임하고 난 뒤부터였다고 합니다. 파리 사람들은 그 이전에는 커피가 심한 질병과 무력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의사들의 경고 때문에 이를 멀리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프랑스에 커피하우스를 보급하는데 공헌한 루이 14세는 1664년에 처음 커피를 마셔본 뒤 1670년경에는 해마다 네덜란드에서 왕실 전용 커피를 수입토록 했습니다.

1715년에는 네덜란드인이 가이아나에 커피나무를 이식함으로써 커피나무가 아메리카에 처음 소개되었습니다. 1718년, 네덜란드인이 가이아나에서 커피를 재배했습니다. 1720년에는 프랑스 해군제독 클리에가 가져온 커피묘목을 마르티니크 섬에 심었으며. 1723년 ~ 1852년까지 남미에 커피재배가 확산되었습니다. 프랑스령 기아나의 총독부인이 화려한 꽂다발 속에 커피묘목을 숨겨 잘생긴 스페인 연대장에게 선물함으로써 그 묘목은 콜롬비아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고 ,이어 브라질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렇게 브라질과 콜롬비아로 보내진 커피는 최상의 재배조건 위에서 잘 자라 두 나라를 세계 최대의 커피 생산국으로 만들었습니다.

한편, 북아메리카에 커피가 전파된 것은 17세기 말로 뉴암스테르담(지금의 뉴욕)의 부유층 사이에서 마시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당시만 해도 북미에서는 기호음식으로 차를 마셨는데, 1773년 4월 영국 의회가 차세법을 통과시켜 엄청난 세금을 부과하자 이에 반발한 시민들이 인디언으로 위장, 차를 가득 싣고 보스턴항에 정박 중이던 영국 동인도회사의 배를 파괴해 버린 것입니다. 미국 독립전쟁의 발단이 된 이 '보스턴 차 사건'이후 북미에서도 차를 대신해 커피가 보편화되었습니다.

한편, 동양에 커피가 처음 들어온 것은 1878년 경 일본에 들어온 것(묘목)이 처음이라고 하며 1888년 일본 동경에 커피점이 생겼습니다.

1690년~1699년 사이에는 네덜란드인이 스리랑카와 인도네시아에 커피나무를 심어 재배에 성공했으며 1740년에는 자바섬에서 필리핀으로 커피가 전파되었습니다. 1840년에는 영국인들이 인도를 자국에서 소비하는 커피의 공급지로 삼게 되었습니다.
커피의 기원 l - 이디오피아에서 온 빨간열매
 
커피의 기원을 찾아나서면 대륙과 역사를 뛰어넘어 거의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어떻게 그 빨갛고 달콤한 열매가 세계에서 가장 널리 소비되는 음료의 원료가 될 수 있었을까. 분명한 기록이나 고고학적 증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커피의 기원과 전래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과 허구가 얽혀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로만 전해지고 있다. 떠도는 많은 이야기 중에서 목가적인 내음이 물씬 풍기는 염소치는 목동의 이야기를 먼저 살펴보자.

칼디라는 이름의 목동이 있었다. 그는 가뭄이 계속되자 평소 가지 않던 먼 곳까지 염소 떼를 몰고 갔다. 염소를 풀어놓고 한가로이 거닐던 목동은 염소들이 어떤 나무의 잎과 열매를 먹더니 평소보다 더 껑충거리고 들뜨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염소들이 먹는 열매를 직접 따먹어 보자 자신도 들판을 가로질러 마구 춤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신기한 열매에 대한 소문이 널리 퍼지게 되어 커피의 기원을 이루게 되었다. 함께 전해지는 또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목동들은 그 열매를 갈아 동물의 지방과 섞어 작은 덩어리로 만들어 먼 길을 떠날 때 고 열량 비상식량으로 가지고 다녔다고도 한다.

커피 열매를 처음으로 먹기 시작한 사람들은 발효된 커피열매로 술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커피를 뜻하는 아랍어 카와(qahwa)가 원래는 술(wine)이란 뜻으로 쓰였기 때문에 아마도 잘못 해석된 것으로 여겨진다.

아랍 문헌에 커피에 대한 언급이 처음 나타난 때는 15세기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랍 세계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먹기 시작한 사람은 이슬람교의 신비주의자들인 수피교도들이었다. 그들은 커피를 음료로 마셨던 것이 아니라 긴 밤기도 시간 동안 잠들지 않게 하는 약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커피 원두를 그들에게 전한 사람은 다바니라는 이름의 학자였는데, 커피열매가 의약용으로 쓰이던 이디오피아에서 커피를 들여왔다. 다바니가 예멘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병이 들었는데 커피는 그를 병에서 구했을 뿐 아니라 기도할 힘까지 주었다. 그 후로 커피는 수피교도들 사이에서 널리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의 사람들이 어떻게 커피를 섭취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좀처럼 짐작할 수가 없다. 커피콩이 처음으로 볶아진 것은 언제이며 우리가 오늘날 느끼는 것처럼 매력 있는 음료로 마시기 위해 가루를 내고 끓이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여기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16세기 후반 유럽의 여행가들은 '아랍인들은 태운 열매로부터 만들어진 거무스름한 시럽을 마신다' 고 언급하고 있다.

카와란 단어를 잘못 해석하는 바람에 커피의 기원에 대한 시점을 잡는 데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아랍의 문헌에서 그것은 자주 술이란 단어와 혼동되어 쓰였기 때문에 학자들은 커피의 기원이 실제보다 오래된 것으로 잘못 추측하기도 했다. 다른 아랍어 쿠와(quwwa)에서 비롯된 오해도 있다. 그 단어는 힘 또는 강함이라는 뜻인데 이것은 기운을 돋우는 커피의 효과를 연상시키므로 커피의 어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 밖에도 커피가 처음 발견된 이디오피아의 지명 카파(KAFFA)에서 유래했다는 설, 커피나무를 처음으로 이용했던 이디오피아의 여인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설 등 여러 가지 주장이 있다.
커피의 기원 ll - 낭만처럼 전해지는 커피의 전래
 
커피의 기원에 대한 연구도 재미있지만 커피가 각 나라에 어떻게 전해졌는가를 살펴보는 일도 흥미롭다. 나라 마다 커피의 전래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그 이야기들은 사실적인 근거를 바탕에 두고 있기 보다는 그저 낭만적인 전설 처럼 전해지고 있다.

아랍의 약으로 알려진 커피가 마침내 유럽에 소개됐을 때 커피는 온갖 병을 치유하는 만병통치약으로 소개되었다. 유럽인들은 나중에야 비로소 아랍인들이 약효 때문에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커피의 향을 즐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 아랍은 이미 원두무역에 대한 독점권을 확보하고 있었는데, 아랍인들은 그들의 커피를 지키기 위해 싹이 터서 발아할 수 있는 종자의 반출을 막고, 열매를 끓이거나 볶아서 유럽행 배에 선적했다. 외국인은 커피 농장 방문이 금지되었으며, 호주머니에 몰래 원두나 묘목을 숨겨 달아나지 못하도록 감시 당했다. 그러나 메카로 가는 순례자들은 원두를 가지고 나오기도 하였다.

1616년 마침내 네덜란드의 한 상인이 인도의 순례자로 부터 원두를 입수해 그것을 유럽으로 밀반출했다. 이 후 70년 동안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의 플랜테이션에서 커피를 재배했고 커피는 네덜란드의 가장 인기 있는 음료가 되었다.

프랑스에서 커피나무가 전래된 것은 1714년 암스텔담 시장이 루이 14세에게 커피나무를 선물한 때 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프랑스가 본격적으로 커피를 재배할 수 있었던 것은 노르망디 출신의 젊은 군인 끌리외(Gabriel De Clieu)의 애국적 정열 덕이었다. 루이 14세의 정원에서 커피묘목 몇 그루를 구한 그는 자신이 근무하던 아메리카 식민지의 한 곳인 마르티니크 섬으로 향했다. 항해 중 자신에게 할당 받은 식수까지 커피나무에 주며 그는 한 그루의 나무를 마르티니크 섬에 옮겨심는데 성공했다. 이곳에서 무성하게 자란 커피는 프랑스령 기아나로 옮겨져 번성했다.

브라질에 커피가 전해진 사연은 한결 로멘틱하다. 스페인 연대장은 커피묘목을 구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프랑스령 기아나의 총독 부인에게 접근한다. 연대장의 잘 생긴 외모에 연모의 정을 느끼던 총독 부인은 그의 간절한 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결국엔 화려한 꽃다발 속에 커피 묘목을 숨겨 그에게 선물하게 된다. 그 묘목은 콜롬비아에 옮겨 심어지고 이후 브라질로 퍼져나갔다. 그렇게 브라질과 콜롬비아로 보내진 커피는 최상의 재배 조건위에서 잘 자라 두 나라를 세계 최대의 커피생산국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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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기원 lll - 커피하우스의 등장배경
 
이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음미하면서 커피와 커피하우스 문화에 대해 살펴보자. 커피는 수피교도들이 종교의식의 일부로 받아들였던 때부터 사회적인 음료였다. 참배자들은 밤중에 기도하거나 공부할 때 졸음을 쫓기 위해 커피를 마셨는데, 그들은 법도에 따라 기도 전에 커피를 마시기 위해 모였으며 커피는 종교적인 음료로서 지위를 부여 받았다. 유럽의 여행가들은 아랍인이 모여 앉아 한 두 잔의 컵에 커피를 가득 채우고는 원을 따라 컵을 돌리면서 나누어 마시는 것을 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잔을 자기 앞에만 두거나 옆 사람에게 권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랍에서는 곧 커피하우스가 등장했는데 남자들은 이 곳에서 모여 커피를 마시며 다양한 주제에 대해 토론을 벌이곤 했다. 유럽 여행가들은 아랍에는 커피를 추출하고 마시는 것에 관련된 예절과 법도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커피를 마시기 전에 절을 하고 상대를 존경한다는 표현을 많이 했다. 커피는 친절함과 환대의 표시로 손님에게 제공되었고 주인과 함께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결례로 생각되었다. 카페에서는 서로 커피를 사겠다며 겨루는 일이 예사로왔는데, 오늘날에도 터키의 작은 마을에 있는 카페에서는 낯 모르는 옆자리의 사람이 보낸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다고 한다.

커피가 유럽에 전래되었을 때 단지 음료로서가 아니라 그 문화까지 함께 수입되었다. 17세기 런던과 파리에는 수많은 커피하우스가 세워졌다. 1689년 파리에 세워진 카페 프로코페는 오늘날에도 조그만 컵에 담긴 커피를 팔고 있다. 카페 곳곳에 장식된 거울, 대리석, 벨벳 등은 과거의 사치스러운 커피 문화를 짐작케 한다. 1700년경 런던에는 3천 개에 가까운 커피하우스가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당시의 인구가 60만이었고 여성의 출입이 금지되었음을 고려한다면 1백 명 당 커피하우스가 하나 있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다소 과장된 이야기라 하더라도 당시 커피하우스가 얼마나 성행했는가를 알 수 있다.

유럽에서는 처음에는 궁궐에서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여 부르조아, 서민층을 거쳐 모든 계급이 맥주나 와인 대신 커피를 음료로 선택하였다. 그동안 깨끗한 물과 신선한 우유를 접할 수 없었던 곳에서는 독한 소다수, 맥주, 와인이 음료의 전부였다. 그 당시의 생활상을 짐작케 하는 문헌이 있다.
'예전에는 노동자들이 맥주 한 컵을 마시며 하루를 시작했던데 반해 지금은 정신을 맑게하는 커피로 하루를 시작한다. 커피를 널리 마시게 되자 노동자들의 작업 능률이 향상되었고, 값이 싼 커피는 경제적으로도 이득을 주었다. 선술집들은 문을 닫고 커피하우스로 재 단장했는데 거기에서 사업가들은 맑은 정신으로 일하며 사교할 수 있었다.'

커피하우스는 비즈니스의 장으로 자리잡았는데 특히 영국에서는 사업체로까지 연결되어 로이드 커피하우스의 경우, 세계에서 가장 큰 보험회사의 하나인 로이드 오브 런던으로 차츰 발전했다. 커피하우스들은 런던 항구 가까이에 자리잡았기 때문에 선주, 선장 , 상인, 보험브로커들이 모여들었다. 어떤 사업가들은 커피하우스의 부스 하나를 세 내어 사무실 처럼 쓰기도 했다. 커피하우스는 뉴스와 정보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남자들이 너무 많은 시간을 커피하우스에서 보냈기 때문에 런던의 부인들과 찰스 2세는 커피를 금지하려는 시도를 했다. 또한 영국은 프랑스나 네덜란드처럼 커피가 재배되는 식민지가 없었던 반면 동인도회사를 통해 차는 싼 값으로 수입할 수 있다는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커피하우스는 점차 줄어들었다.

프랑스와 네덜란드, 독일에서는 남녀 모두가 커피를 즐겼다. 집에서 주부들이 커피를 직접 끓였으며 커피는 가정의 안락함을 상징했다. 프랑스의 커피하우스는 모든 계급의 남녀가 모이는 존경받는 회합장소였다. 독일에서는 커피가 인기있었지만 프리드리히 대왕은 커피를 금지했다. 독일 역시 커피가 생산되는 식민지가 없었고 많은 중간상인들을 거쳐 턱없이 비싼 가격으로 커피를 사야 했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왕은 커피금지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 시가지에 커피 냄새를 맡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파견했다. 이 사람들은 커피 볶는 냄새를 맡기 위해 코를 킁킁거리며 돌아다녔으며, 위반자들은 발각돼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독일사람들은 커피 대신 치커리를 마시기 시작했으며 부자들만이 진짜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커피의 기원 lV - 우리나라의 커피역사
 
미국에서는 1767년 차에 세금을 부과한 타운젠트법안이 통과되면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현재 미국은 하루 4천5백만 잔의 커피를 마셔대는 대량소비국이 되었고 인스탄트 커피 등 여러 가지 커피를 개발해 내었다.미국인들은 집과 회사에서 커피를 마시는 일이 일반적이다. 일본의 경우 커피 묘목이 소개된 것은 1878년이었고, 1888년에는 도쿄 우에노에 첫 커피점이 생겼다.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커피를 접한 사람은 고종황제로 1895년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면서 커피를 마셨다. 그 후 독일인 손 탁 여사가 중구 정동에 커피점을 차린 것을 시작으로 개화기와 일제시대에는 명동과 충무로, 소공동, 종로 등에 커피점들이 자리잡았다. 커피의 대중화는 6.25 전쟁 시기에 미군부대에서 흘러 나온 커피를 통해 이루어졌다. 최초로 인스탄트 커피를 생산한 곳은 1970년 동서식품이었다. 현재는 커피전문점이 많이 생겨났으며 집안에서도 기구를 갖추고 입맛에 맞는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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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값 가장 비싼 도시는 모스크바 [조인스]

생활비도 1위, 서울 물가는 세계 5위




세계에서 가장 커피가 비싼 도시는? 정답은 모스크바다. 커피 한잔 평균 가격이 봉사료와 세금 포함해 10달러 19센트(약 1만 1000원)다. 미국의 컨설팅 회사 머서(Mercer) 런던 사무소에서 전세계 143개 도시를 대상으로 교통비, 음식, 집세, 옷, 술, 담배 등 200여개의 품목에 관한 생활비 수준을 조사한 결과다. 그렇다면 커피 값이 가장 싼 도시는?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이다.

브라질의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커피의 나라 답게 커피 값도 싸다. 한잔에 2달러 3센트다.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는 2달러 36센트다. 뉴욕도 싼 편이다. 3달러 75센트다. 지하철 요금은 런던(5달러 89센트)로 가장 비쌌다. CD는 체코 프라하가 가장 비쌌다. 1장에 33달러 53센트였다.




물가 비싼 도시 톱 50 (2008년 3월 기준. 괄호안은 지난해 순위)

1. 모스크바(1)
2. 도쿄(4)
3. 런던(2)
4. 오슬로(10)
5. 서울(3)
6. 홍콩(5)
7. 코펜하겐(6)
8. 제네바(7)
9. 취리히(9)
10. 밀라노(11)
11. 오사카(8)
12. 파리(13)
13. 싱가포르(14)
14. 텔아비브(17)
15. 시드니(21)
16. 더블린(16)
16. 로마(18)
18. 상트 페테르부르크(12)
19. 빈(19)
20. 베이징(20)
21. 헬싱키(22)
22. 뉴욕(150
23. 이스탄불(38)
24. 상하이(26)
25. 암스테르담(25)
25. 아테네(29)
25. 상 파울루(62)
28. 마드리드(26)
29. 프라하(49)
30. 라고스(37)
31. 바르셀로나(31)
31. 리우 데 자네이루(64)
31. 스톡홀름(23)
34. 두알라(24)
35. 바르샤바(67)
36. 멜버른(64)
37. 뮌헨(39)
38. 베를린(45)
39. 브뤼셀(44)
40. 프랑크푸르트(40)
41. 다카르(33)
42. 룩셈부르크(43)
44. 알마타(30)
45. 브라티슬라바(31)
46. 뒤셀도르프(45)
46. 리가(72)
48. 뭄바이(52)
49. 자그레브(49)
50. 함부르크(57)

자료=www.mercer.com

디지털뉴스 jdn@join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