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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따라멋따라

흐르는 강물처럼… ‘천렵의 추억’ 굽이굽이

금강 줄기따라… 충북 옥천을 가다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금강변의 아늑한 강변 마을에서 투망을 던져 고기를 잡는 마을 주민들을 만났다. 피라미며 갈겨니가 몇 마리씩 들었고, 간혹 손바닥만한 붕어와 꺽지도 모습을 보였다. 금강에서는 족대를 펼치거나 통발 등을 놓는 천렵은 허용되지만, 투망은 어업 허가를 받은 주민들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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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부터 볕이 따갑더니 장마가 시작됐습니다. 모내기가 다 끝난 논에서는 벼들이 쑥쑥 자라고, 진초록 옥수숫대는 벌써 허리춤을 넘어섰습니다. 건너편 산자락의 녹음은 하루하루 더욱 짙어갑니다. 바야흐로 여름의 문턱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이런 초여름날에 가장 어울리는 여행 목적지라면, 그곳은 아무래도 강(江)이 아닐까 싶습니다. 맑은 수면에는 진초록의 산 그림자가 내려와 있고, 미루나무가 바람에 이파리를 팔락거리며 서있는 초여름의 강 풍경은 참으로 평화롭습니다.

유년시절을 농촌에서 보냈다면, 강변이나 계곡에서 돌더미를 들춰 물고기를 잡았던 ‘천렵’의 추억을 갖고 있을 겁니다. 바지를 둥둥 걷어붙이고, 강물에 들어가 강 어귀 돌틈이나 수초 아래에 족대를 넣고 첨벙거리며 고기를 몰면 은빛 비늘을 터는 피라미며 갈겨니, 모래무지, 참마자 따위가 건져 올려졌지요. 한 번씩 족대를 들 때마다 탄성과 함께 왁자한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그렇게 잡아 올린 물고기를, 밭에서 따온 어린 호박잎, 고추, 깻잎 따위와 함께 양은 솥단지에 넣어 고추장을 진하게 풀어 얼큰하게 매운탕을 끓여 냈습니다. 여기다가 쫄깃한 수제비까지 떠넣으면 금상첨화였지요. 그렇게 강가에서 놀다 지치면, 시원한 나무그늘 밑에서 빠져들었던 꿀맛 같은 낮잠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그런 옛 풍경을 찾아나선 길입니다. 충북 옥천군 청성면 합금리. 구불구불 금강을 끼고 달리는 강변의 자그마한 마을입니다. 그곳에는 아직 첨벙거리며 족대를 펼쳐 물고기를 잡는, 그런 풍경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즈음 다른 강들은 죄다 시멘트로 단장됐거나, 옛 정취가 남아 있는 강이라도 천렵은 엄하게 금지됐습니다. 하지만 이곳 옥천이 끼고 있는 금강은 다릅니다. 비포장길을 끼고 크게 굽이쳐 흘러가는 강의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다, 족대를 쓰거나 어항 따위를 놓는 정도는 허락된 곳입니다. ‘합법적’으로 천렵을 할 수 있는 몇 안 남은 곳 중의 하나인 셈입니다.

사실 족대를 휘두르거나, 어항을 놓는다고 해봐야, 약삭빠른 물고기를 얼마나 잡을 수 있겠습니까. 예전처럼 솥단지를 걸어놓고 장작불을 피워 떠들썩하게 매운탕을 끓여 먹자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초여름의 강변에서 천렵을 하다가, 다슬기를 잡다가, 조약돌을 집어 물수제비도 뜨면서, 오랜 친구들 혹은 가족들과 함께 유년시절의 추억담을 나누고 새로운 추억을 만드는 정도면 되지 않겠습니까

옥천의 금강 줄기를 따라가는 여행길에는 ‘부소무니’란 절경을 간직한 멋진 강변 드라이브 코스도 있고, 풍운아 김옥균과 기생 명월의 사랑 얘기를 담고 있는 운치 있는 정자도 서있습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로 시작하는 ‘향수’의 시인 정지용이 나서 자란 곳도 이곳 옥천입니다. 물 댈 옥(沃)에 내 천(川). 옥천은 그야말로 초여름의 여정에 참 잘 어울리는 평화로운 ‘물의 나라’입니다.

옥천=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08-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