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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동 북한산 자락에 이시영 선생 묘 등 14기 '방치' - 잡초에 덮여… 녹슨 철조망에 갇혀 서러운 독립유공자 묘소




조선일보

잡초에 덮여… 녹슨 철조망에 갇혀 서러운 독립유공자 묘소

기사입력 2008-08-27 03:04 |최종수정2008-08-27 09:03 기사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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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서울 수유동 북한산국립공원 자락에 위치한 독립유공자 유림 선생의 묘소 주위에 설치된 철조망이 관리가 되지 않아 녹 이 슬고 뜯겨 있다. 허영한 기자 young@chosun.com

수유동 북한산 자락에 이시영 선생 묘 등 14기 '방치'

당국, 건국 60년 기념사업 일환 "11월까지 정비하겠다"


26일 오후 서울 수유동 북한산 국립공원 자락. 군데군데 수풀이 무성한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李始榮) 선생의 묘소가 나타났다. 묘소는 팔꿈치 길이의 잡초로 덮여 있었고 묘소를 떠받치는 15m 높이의 오른쪽 석축(石築)에는 손을 집어넣을 수 있을 정도의 큼직한 균열이 3~4m 길이로 나 있었다. 큰비가 내려 석축이 무너지면 묘소도 따라 내려앉을 것처럼 위험해 보였다.

이시영 선생의 묘소에서 산 아래로 20m 가량 떨어진 곳엔 낡은 봉분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김성율 선생 등 이름이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상하이 임시정부 소속으로 중국 전역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순국(殉國)한 광복군 17인의 합동 묘지였다. 이들 17인은 묘비 없이 묘지 옆에 세워진 초라한 안내판에 자신들의 이름을 올려놓고 있었다. 묘지는 길게 자란 잡풀로 온통 뒤덮여 있었다.

그 인근에 있는 다른 독립유공자 묘역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한·중 항일군을 조직하고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유림(柳林) 선생의 묘소는 일반인 묘소보다도 못해 보였다. 국립공원 입장료를 내지 않기 위해 샛길을 이용하곤 했던 등산객들이 선생의 묘소를 훼손하는 것을 막기 위해 유족들이 설치해 놓았다는 철조망이 녹이 슬고 부서진 채 기우뚱 기울어져 있었다.

일제시대 대동청년단으로 항일활동을 하고 제헌의원을 지낸 서상일(徐相日) 선생의 묘역은 올라가는 돌계단이 무너져 있었다. 이들 묘소 인근에는 환경부가 '환경 저해시설'로 규정한 음식점들이 평상을 펼쳐놓고 장사를 벌이는 광경도 목격됐다. 북한산 자락에는 이 같은 독립유공자 묘소가 모두 14기(基) 자리하고 있다.

이들 독립유공자 묘소가 관리되지 않은 것은 지금까지 국가가 이들 묘소를 책임지고 관리할 근거법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가보훈처는 전국에 있는 3000여개의 독립유공자 묘소를 유족이 있는 경우에는 유족이 관리하거나 지자체가 만든 기념사업회에서 관리하도록 맡기고 있다.

국립묘지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유족들이 원하는 경우 국립묘지 등으로 이전할 수 있지만, 유족들이 이전을 원치 않을 경우 묘지 관리에 관해 정부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북한산처럼 국립공원에 있는 묘지는 국립공원 관리공단의 관할 아래 있기 때문에 해당 지자체도 독립유공자 묘역 관리에 대해서는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 북한산 관할구청인 강북구청도 독립 유공자의 묘소임을 알리는 안내판만 설치해 놓았을 뿐이다.

그러나 유족들은 공훈 등급에 따라 지급되는 매달 100여만원 안팎의 연금으로는 벌초 이외에 진입로나 주변 시설 관리까지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시영 선생의 묘소는, 며느리인 아흔아홉 살의 서차희 여사가 묘소 지척에 살며 지금껏 지켜오고 있다. "자손이 아니면 누가 돌보겠나"란 걱정 때문이었다.

서차희 여사는 1964년쯤 정릉에서 이곳으로 이시영 선생의 묘소가 이장된 이후 묘소를 돌보다가 1971년에는 묘소 아래 무허가 건물로 이사와 밤낮으로 묘소 관리를 해왔다.

환경부국립공원관리공단은 이같은 사실을 알면서도 나서지 않다가, 최근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묘역 정비에 뒤늦게 나섰다.

환경부는 "북한산 수유지구 일대의 독립유공자 선열 묘역을 건국 60주년 기념사업 추진기획단 등 관계기관과 함께 올 11월까지 정비할 것"이라고 26일 밝혔다. 11월까지 7억원의 예산을 들여 묘역의 진입로와 노후된 석축, 안내판 등을 정비한 후 이곳을 청소년 역사교육과 독립유공자 추모의 장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예산 확보에 어려움이 있어 우선적으로 북한산 국립공원 내 묘역을 대상으로 환경정비 사업을 벌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시영 선생의 손자 이종건(64)씨는 "묘소에 떼를 입히거나 화분을 가져다 놓으면 다음날 없어져 애를 끓인 적도 있었고 비가 많이 오는 밤이면 묘소가 무너질까 봐 어머니가 잠도 못 주무신 적도 많았다"며 "이제라도 국가가 묘소 정비에 나선다니 어머니도 조금은 마음을 놓으실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민 기자 ym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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