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21]
서민들 ‘신 보릿고개’에 신음
일을 할수록 적자 누적…생계형 소상인 등 하루하루 시름만 깊어져
“보릿고개 때에도 지금처럼 막연하진 않았다. 손님이 있을 때는 몸이 바쁘니 잊어버리지만 밤이 되면 심장이 타들어간다. 종업원 월급날은 왜 그리 자주 다가오는지…. 정말 요즘은 소주 없으면 밤잠을 잘 수가 없다.”
지난 6월 4일, 시내에서 만난 중국집 사장 정연수(47세)씨의 하소연이다. 그는 “원래 중국집은 경기를 잘 타지 않는다. 돈 없는 서민들이 가벼운 주머니로 한 끼 식사를 해결하는 곳일 뿐이다. 그런데 원가가 올라도 너무 올랐다. 파는 그릇 수는 같은데 재료비가 너무 많이 올라 오히려 팔면 팔수록 적자가 커진다”면서 “정말 이래가지고는 먹고 살 길이 없다. 차라리 가게 문을 닫고 남의 집 주방이라도 가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밀가루 값 오르고 식재료 값 줄줄이 올랐다. LPG 값도 1천원을 넘어섰고, 이달에 또 오른다는데, 자장면 값은 올리기가 쉽지 않다. 지난번(3월)에 500원 올려 3000원 받는데 계산대로 한다면 4000원은 받아야 예전의 이문이 보장된다. 하지만 저렴해서 먹는 자장면이 4000원으로 오르면 분명 손님이 줄어들 것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씨의 말대로 중국집은 최근 물가변동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곳이다. 곡물가 인상에 LPG·휘발유 값 폭등 등 모든 물가와 직결되는 업종이다. 또한 ‘MB물가지수’라고 칭하는 52개 생필품 가격 관리 항목에 자장면도 포함, 집중 관리된다는 것도 큰 부담이다.
이런 문제는 중국집 만의 일이 아니다. 서대문에서 삽겹살 집을 운영하는 정재덕(54세) 사장은 “남들은 속도 모르고 장사 잘 된다고 이야기 하는데, 겉으로 남고 안으로 까지는 게 고기집이다”라고 말했다. 최근 미국산 쇠고기 파동과 조류 인플루엔자(Avian Influenza) 때문에 돼지고기 수요가 급증하면서 돼지고기 값도 천정부지로 올랐기 때문이다.
식당은 팔면 팔수록 적자구조
그는 “우리집에 들어오는 삽겹살 가격이 1Kg에 15000원이 넘는다. 1인분 200g을 잡으면 고기 값만 3000원이다. 옆에 붙은 기름덩이 떼어내고, 썰다가 부스러지는 것 따지면 그것보다 더 올라간다. 상추·고추에 반찬값까지 따지면 1인분 8000원 받아봐야 정말 남는 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밤 11시까지 팔아봐야 일하는 아줌마들 일당 주기도 힘들다면서 고기값을 9000원으로 올릴까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택시운전 30년 경력의 이용호씨(59세)도 요즘 일할 맛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LPG자동차용 부탄 가격이 리터당 1040원이다. 하루에 50리터를 넣으면 52000원이야. 하루에 밥 두끼 사먹는다고 하면 10000원, 담배 한값에 2500원해서 적어도 65000원 정도 들어가요. 하루 12만원 찍어봐야 절반이 날아가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달에 차를 새로 구입했다. 세금 감면 혜택을 받았지만 1천600만원이 넘게 들어갔다. 평균 5년 탄다고 가정하면 1년에 3백만원 가량 감가상각 되는 것이다.
그는 이어 “개인택시는 이틀 일 하고 하루 쉬니 한달에 20일 일해요. 차량 감가상각에 가스값, 보험료, 공제료 등 제하면 하루 20시간 가까이 일해 버는 돈이 고작 3~4만원이야. 또 개인적 일도 있고 하니 20일 일하는 것도 아니지. 보통 17~18일 정도 하는데, 한달 입에 단내 빠지게 일해야 70~80만원 벌어가는 거지”라고 한숨 섞어 이야기 한다. 그는 이달에도, 다음달에도 가스 값이 계속 오른다는 뉴스를 들을 때마다 억장이 무너진다고 했다.
택시기사 등 생계 위협 받는다
이렇듯 서민 경제는 지금 고사(枯死) 직전에 달하고 있다. 물가는 치솟고 경기는 가라앉고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망연자실하고 있는 것.
통계청의 올해 1분기 가계수지동향에 따르면 전국가구의 월 평균 소득은 가구당 341만5천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5.0% 늘었으나 물가 급등에 따라 실질소득은 1.2% 증가에 그쳤다.
반면 월평균 소비지출은 가구당 241만9천원으로 같은 기간 5.3%(실질 1.5%) 늘어나 소득 상승률을 웃돌았다.소비지출 항목은 유가 상승의 여파로 연료비·전기료 등 광열·수도비 지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14.6% 늘어났고 차량용 연료비를 포함하는 개인교통비 지출 역시 10.8% 증가했다.
앞의 통계가 평균치를 나타내는 것이라 평균 아래의 서민들의 생활과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통계치만 따지더라도 소비지출의 증가로 가계의 운영이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실질적으로 통계 평균에 못 미치는 서민들의 생활에는 더욱 튼 어려움을 주고 있다.
최근의 경유가격 급등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농어민과 자영업자 같은 서민들도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다. 특히 선택적으로 차량 운행 등을 줄여 고유가에 따른 영향을 줄일 수 있는 일반 가계와 달리 화물운송업자, 관광버스 차주, 농어민 등 생계수단으로 차를 사용하는 서민들은 이런 경유값 상승의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최근 LPG 가격까지 인상되면서 택시 운전사들도 비용이 크게 늘어나 울상을 짓고 있고, 취사용으로 이용되는 프로판가스 가격이 오르면서 식당을 운영하는 영세업자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한상오 기자 hanso110@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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