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독도수비대, '영웅'은 없었다 |
[독도수비대의 진실①] 미역채취선 타고 8개월간 독도 경비 |
- 취재 : 김영균 기자
- 동영상 : 김호중 문경미 기자
▲ 1954년 8월 28일 독도 동도에서 열린 경비초소 기념 사진촬영. 독도의용수비대는 1953년부터 활동했다고 기록돼 있으나 실상 1954년 4월부터 1954년 12월까지 8개월간 미역을 채취하면서 독도경비를 병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아래쪽 붉은원이 고 홍순칠 대장. |
ⓒ 독도박물관 |
"1953년 4월 20일 창설. 미군으로부터 소총과 기관총을 훔쳐 독도 경비. 일본 수산고등학교 실습선 하도마루호 나포.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순시선 해구라호, 오키호 등과 수차례 총격전 격퇴. 일본 항공기와 대공전투. 독도 동도에 '한국령(韓國領)' 암각. 1956년 12월 국립경찰에 독도방어 임무를 넘겨주기까지 3년 8개월간 독도 수호."
독도박물관과 국립경찰사 등의 기록에 남아있는 '독도의용수비대(대장 홍순칠·작고) 33명'의 활약상은 이처럼 눈부시다. 하지만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이 영웅들의 이야기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진다면 어떨까.
지난 9월말 <오마이뉴스>는 "독도의용수비대의 활약상이 왜곡·과장됐다"는 제보를 받았다. 이 제보를 근거로 20여 일에 걸쳐 경북 포항과 경주·울릉도, 그리고 울산광역시에 흩어져 살고 있는 독도의용수비대원과 전직 경찰관들 10명을 추적해 만났다. 아쉽게도 '왜곡·과장'이 사실로 확인됐다.
재향군인들 달래려 '독도 미역 채취 3년' 독점권
가장 먼저 확인된 점은 독도의용수비대의 영웅담은 창설 시기부터 활동 기간, 활동 내용이 과장되거나 왜곡됐다는 것이다.
지금껏 알려진 공식 기록에는 독도의용수비대가 1953년 4월에 창설됐고, 3년 8개월 동안 독도에 상주하며 수차례 전투를 치러온 것으로 돼있다.
"홍순칠씨가 독도에 처음 들어간 것은 1954년 5월이다. 군에서 제대한 홍씨가 울릉도 재향군인회를 결성하자 당시 울릉경찰서장이던 구아무개씨가 울릉군수, 어업협동조합 이사와 협의해 울릉도 최대 이권사업인 독도 미역채취권을 3년간 맡긴 게 독도의용수비대가 시작하게 된 계기다."
지난 9월말 경북 포항시에서 만난 김산리(78세)씨는 당시 상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1954년 당시 경사 계급으로 울릉경찰서 병사계장을 맡았던 김씨는 의용수비대가 "원래는 미역을 채취하러 들어간 사람들"이라고 확인했다.
"당시 일본 순시선이 자주 출몰하고 하니까 위험하다고 총기를 달라고 했는데, 경찰에서는 민간인에게 총기를 그냥 줄 수 없어 처음에는 의용경찰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무기를 대여해준 것이다. 미역을 채취하는 김에 경찰에 협조해 독도경비도 같이 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홍순칠 대장을 비롯한 재향군인회에 독도 미역채취권 3년을 보장한 이유에 대해 김씨는 "당시 재향군인회의 행패가 이만저만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이권사업을 줘서라도 상이군인들을 달래야 했다는 것이다.
전 수비대원 "길게 잡아야 8개월 경비했다"
▲ 단기 4287년 8월 28일 독도경비초소 건립 기념 사진. 서기로 환산하면 1954년 8월 28일이다. 사진 오른쪽과 아래 경찰관들이 보인다. 독도의용수비대는 경찰이 아닌 자신들이 독도를 지켰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 때부터 독도는 민간인이 아닌 경찰관이 경비임무를 맡고 있었다. |
ⓒ 독도박물관 |
"1954년 8월 제대하니까 홍순칠씨가 불러서 '독도의용수비대를 같이 할 생각이 없느냐'고 했다. 그래서 얘기를 들어보니까 좋은 뜻 같아서 같이 하기로 했다. 나는 나중에 합류했는데 그 몇달 전에 벌써 몇명이 다녀왔다."
독도의용수비대 활동이 1953년이 아니라 1954년부터 시작됐다는 점은 1978년 출판된 <다큐멘터리 독도수비대>란 책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홍 대장은 이 책 서문에서 "우리가 1954년부터 3년간 무인고도 독도에서…"라고 썼다. 스스로 독도의용수비대의 결성 시기를 1954년으로 인정한 셈이다.
작고한 고 홍순칠 대장의 딸인 홍연순씨도 "정부가 독도의용수비대 활동 시작을 인정하는 시기는 1954년이 맞다"고 전했다. 다만 홍씨는 "민간인이던 아버지(홍순칠)가 독도에 처음 상륙한 의미있는 날짜는 수기(홍순칠 저, <이 땅이 뉘 땅인데>)대로 1953년 4월 20일이라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독도의용수비대의 해산 시기도 사실과는 크게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정부는 독도의용수비대가 1956년 12월까지 활동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생존 수비대원의 증언에 따르면, 독도의용수비대는 결성된 그 해(1954년) 12월 사실상 활동을 중단했다. 독도의용수비대원 중 일부가 경찰로 특채되면서 경비업무 자체가 경찰로 넘어간 것이다.
서기종씨는 "1954년 12월 독도의용수비대원 중 9명이 울릉경찰서 경찰관으로 특채됐다"며 "그 이후에는 독도의용수비대가 아니라 경찰관으로서 독도 경비 업무를 했다"고 밝혔다. 독도의용수비대 제2전대장이었던 정원도(78세·경북 울릉군)씨도 "1954년 12월에 경찰관으로 특채됐다"고 회고했다.
전직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의 증언을 뒷받침하는 자료는 오래된 을릉경찰서 배명기록(근무명단)에도 남아있다. 1955년 울릉경찰서 배명기록에는 1954년 12월 독도의용수비대원에서 순경으로 특채된 9명의 명단이 그대로 나와있다.
당시 순경으로 채용된 9명은 서기종(제1전대장)·정원도(제2전대장)·김영복(제2전투대원)·이규현(제2전투대원)·김영호(제2전투대원)·황영문(수비대 부대장)·이상국(제2전투대원)·양봉준(제1전투대원)·하자진(제1전투대원)씨 등이다.
반면 홍연순씨는 "1956년 12월 독도의용수비대가 경비 임무를 국립경찰에 넘겨주면서 15명이 한꺼번에 경찰관으로 특채된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이는 홍순칠 대장의 수기에 나와 있는 내용 그대로다.
▲ 알려진 사실과 다르게 독도의용수비대원 중 9명은 1954년 12월 정식 울릉경찰서 경찰관으로 발령받았다. 독도의용수비대는 이때부터 사실상 해체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서기종, 하자진, 정원도 씨(오른쪽부터) 등 독도의용수비대원의 명단이 당시 울릉경찰서 근무자 명단에 올라 있다. |
ⓒ 독도박물관 |
전직 경찰들 "고작 2~3개월 경비... 미역 캐러 가놓고 경비라니"
그렇다면 독도에 상주하며 경비했다고 알려진 나머지 기간 동안의 독도의용수비대의 활동은 무엇일까.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울릉도의 노인들은 "제주도 해녀들과 함께 미역을 채취했던 게 고작"이라고 입을 모았다.
1953년부터 울릉경찰서 경사로 10여 차례 독도 경비대장을 맡았던 최헌식(85세·경북 울릉군)씨는 "홍순칠 대장이 미역캐러 다닌 것은 나이든 울릉도 사람들이 다 안다"고 말했다.
"홍 대장이 남긴 다큐멘터리 수기를 봤는데, 3년 8개월 동안 독도를 지켰다는 기록은 95%가 거짓말이다. 울릉도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자기(홍 대장)가 언제 독도 지키러 갔느냐, 미역캐러 다녔지'라는 말이 대부분이다. 순 엉터리다."
최헌식씨는 "1954년 7월 울릉경찰서가 예산을 들여 독도 초소를 짓고 8월 말부터 경비를 시작했다"며 "독도의용수비대가 경비를 했다고 주장하더라도 고작 2~3개월 밖에 안했다"고 지적했다.
울릉도 등에서 경찰관 생활을 한 뒤 경북 포항시에서 은퇴 생활을 하고 있는 박병찬(79세)씨도 "홍 대장은 독도 서도에 30여 명을 데리고 가서 미역을 캐는 일을 했다"고 전했다.
결국 홍순칠 대장이 1953년 4월 20일부터 독도의용수비대를 창설해 1956년 12월까지 3년 8개월 동안 독도를 지켰다는 지금까지의 기록은 사실과 많이 달랐던 셈이다.
그나마 독도의용수비대가 독도를 지키며 경비업무에 도움을 준 것은 길게 잡아도 8개월. 나머지 기간은 울릉도 최대 이권사업인 미역채취에만 전념했다는게 생존자들의 증언이다.
덧붙이는 글 | 기획취재 '독도수비대의 진실'의 게재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진실①] 전설의 독도수비대, '영웅'은 없었다
[진실②] "일본 순시선과 총격전? 전쟁날 일 있나?"
[진실③] 오징어잡고 미역 나르고... 독도는 안 가본 독도수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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