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회 의장은 어떻게 '교황'이 되었나"
한나라당 국회의원들과 지도부는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악용하지 마라'며 오히려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14일 김 의장 사태에 대해 항의하는 민주노동당 이수정 시의원을 향해 "아주머니" "억울하면 탈당하고 한나라당에 오시오"라는 '야유'를 보내던 한나라당 서울시의원들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다.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민노당 의원으로는 유일하게 입성한 이수정 시의원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이는 4년 전과 정확히 일치하는 모습이다.
2002년 6월 지방선거에서 민노당으로서는 최초로 서울시의회에 입성했던 진보신당 서울시당 심재옥 정책위원은 "터질 일이 터졌다"면서 "현 시스템으로는 감시도 통제도 불가능하다"고 털어놓았다.
심 위원은 "질주를 막을 힘은 오직 시민들이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지만 다소 허망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시민단체든, 언론이든 시의회에 대한 감시와 통제 역할을 방기하고 있는 다음에야 힘은 오직 '시민'들이 갖고 있다는 심 위원의 말은 오히려 적확하다. <편집자 주>
김귀환 서울시의회 의장의 뇌물 스캔들 사건을 접하자마자 '터질 게 터졌다'는 생각이 곧바로 떠올랐다. 일어나선 안될 일이지만, 언제라도 발생할 소지가 다분했던, 아슬아슬한 서울시의회를 직접 경험해봤기 때문일테다. 사실 의장 선거와 관련된 잡음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비단 서울시의회의 일만도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 서울시의회에서 터진 의장 선거비리는 그동안 지방의회에서 발생한 사건들 중에서도 가장 큰 사건이고 '동료의원'이기도 했던 사람들이 연루된 사건이라는 점에서 내겐 큰 관심거리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서울시의원으로서 의회에 들어가 첫 번째 발언을 했던 것도 바로 이 의장 선거에 관련된 사안이었다. 떨리는, 그러나 나로서는 지극히 당연하고도 정당한 요구였던 발언이 간단히 묵살되던 그날의 황당한 경험은 이후 4년 내내 서울시의회의 이해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사건들의 시작일 뿐이었다.
김귀환 의장의 뇌물 스캔들 사건은 비상식적이고 비민주적인 서울시의회의 한 단면을 드러낸 것 뿐이다. 시민과 언론의 감시 밖에 서있는 견제없는 서울시의회, 그 의회 내의 절대 강자 한나라당의 도덕불감증과 안하무인 지경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의장단 선거, 그들만의 집안 잔치
소위 교황식 선출방식이라는 의장선거는 그때도 그랬다. 한나라당이 다 결정하고 의회 회의는 형식적 추인 역할만 수행했다. 2002년 6대 서울시의원은 102명, 한나라당 소속 의원은 87명이었다. 그 6대 의회가 열리는 첫 회의에서 의장 선거가 치러졌는데, 의원들의 얼굴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공란에다가 각자가 생각하는 의장감의 이름을 적어내라는 것이었다. 의장의 후보로 나선 사람도 없었고 누구를 추천하겠다는 추천사도 하나 없이 의원들은 공란에다가 누군가의 이름을 써서 투표함에 넣었다.
그 결과 한나라당의 이 아무개 의원이 95표를 받아 의장에 당선되었고 곧바로 준비된 당선 인사까지, 일사천리였다. 더 이상한 것은 똑같은 방식의 부의장 선거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 소속 의원이 95표, 84표를 얻어 각각 한명씩 당선된 것이다.
더더욱 놀라운 일은 회의가 끝나고 곧바로 의회 로비에서 개원 축하 리셉션이 열렸는데 방금 당선된 의장이 돌린 명함에 '서울시의회 의장 이ㅇㅇ'이라는 글자가 선명했던 것이다. 의회가 개원하기도 전에 자신이 의장에 당선될 것이 확실해서 미리 명함까지 만들어 두었던 것이다. 의회의 공식 회의, 의원들의 선출 절차는 요식행위에 불과했던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의장과 부의장은 의회 교섭단체간의 합의 하에 이미 내정되었던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선된 의장이 받은 표는 95표, 한나라당이 87명이고 보면 민주당의 지지 없이는 당선되기 어려운 구조다. 민주당이 14명인데 민주당 소속 부의장이 84표를 받은 것도 마찬가지다. 결국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의장, 부의장 자리를 합의하에 나누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교섭단체에 속하지 않은 나 혼자만 철저히 배제되었고 그 사실을 알 길이 없는 나는 모든 선거를 거부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설령 미리 알았다 한들 나의 보이콧은 똑같았을테지만.
교섭단체란 서울시의회 기준으로는 10인 이상의 의원을 가진 정당이 꾸리는 의회 내 단체로 소속 의원들의 의사를 종합, 통일하여 의회를 원활하게 운영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회의장 좌석배치, 의사일정, 발언자 수 등 의회 운영상의 일들을 의장과 협의하는 일을 한다. 규정상 그런 위상 밖에 되지 않는 교섭단체가 의장과 부의장까지 합의하고 더 많은 의회 운영을 결정지어온 관행은 교섭단체의 구성 목적을 벗어난 월권이다.
교섭단체 간의 논의라는 미명하에 의회 운영을 음성적이고 비민주적으로 결정해온 관행이 개선되지 않고는 민주적인 의회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비록 비교섭단체였다 하더라도 의회에 발 딛고 있는 의원조차 모르게 진행되는 의장선출이 어떻게 합리적이고 민주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의장은 무기명 비밀투표, 과반수 득표로 선출한다는 규정 밖에 없는 헐렁한 의회의 의장 선출규정이 소위 교황식 선거, 불합리한 선거 관행을 답습하게 하고 있다. 그나마 6대 의회 때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교섭단체를 구성해서 물밑일지언정 의장단 논의라도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의 서울시의회는 교섭단체조차 구성할 수 없는 한나라당 일색일 뿐이고 한나라당이 결정하면 누구든 의장이고 부의장이고 당선될 것이 뻔한 마당이니 그들만의 잔치, 의장 후보를 뽑는 내부 선거가 과열, 혼탁할 수 밖에 없는 일 아니었겠는가.
비한나라당 의원은 6명에 불과한 서울시의회에서 한나라당을 견제할 내부적 힘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고 시민들과 언론의 감시가 치열하기를 한가, 한나라당의 내부 경선이 비리스캔들로 얼룩진 것은 어쩌면 필연인지도 모르겠다. 부패의 추억을 가진 한나라당의 도덕불감증이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이었다는 강력한 물증까지 나와진 마당에 말이다.
절차와 상식을 압도하는 '다수의 힘'
이러한 위태로운 관행은 비단 의장 선출과 관련된 문제만은 아니다. 서울시의회의 9개의 상임위원장, 각종 특위 위윈장, 운영위원, 예결산특위 위원 등 의원들이 나눌 수 있는 자리는 많다. 각각의 자리마다 나름의 의미와 권한이 주어고 자리에 따라서는 권한이 큰 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그 자리들이 모두 공개적이고 민주적인 절차를 밟아서 채워진다면야 누군들 걱정하겠는가.
상임위원장은 해당 상임위원회 위원들이 호선해서 뽑고, 특위 위원장은 특위 위원들이 호선해서 뽑으면 될 일이다. 운영위원과 예결산특위 위원은 전문성을 따져서 선임되면 더욱 좋겠고 그럴 수 없다면 돌아가면서 골고루 할 수 있게 원칙을 마련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자리들까지도 물밑에서 다 결정된다는 것이다. 교섭단체도 없는 지금의 서울시의회에서는 독점적 지위의 한나라당이 모든 것을 결정하면 되는 구조이니 더 심각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일당 체제라 하더라도 의회 내의 공개적이고 민주적인 절차는 반드시 필요하다.
내가 경험한 바로도 '어느 상임위원장은 누구로 한다더라'는 말이 돌고나면 거의 그대로 되었고, 예결산특위 위원도 누구는 몇 번씩 하기도 하고 누군 4년 내내 한 번도 못했다. 나 또한 매시기 강력한 의사 표명에도 불구하고 운영위원회와 예결산특위에 단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했다. 의회 다수당인 한나라당의 횡포와 파행적인 의회 운영을 줄기차게 비판해왔던 나의 숙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서울시민들의 관심이 서울시의회 수준 결정
서울시의회 의장 선거비리 문제는 한나라당의 도덕성을 비판하고 해당 의원들을 처벌하고 나서도 끝나는 일이 아니다. 여전히 100대 6으로 붕괴된 의회 내 세력균형과 상실된 견제력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는 어려운 과제가 남아있다. 이는 비단 의장을 비롯한 의회 내 자리다툼에만 걸리는 문제가 아니라 서울시민들의 삶을 좌우할 서울시 정책과 예산과 제도를 결정하는 힘에 관한 문제이다.
서울시의회가 가진 막강한 권한이 특정한 세력과 특정한 시민들의 전유물이 되지 않도록, 서울시의 정책이 특정한 편향에 흐르지 않도록, 서울시의회와 서울시 행정을 바로 세우는 일은 이제 서울시민들 모두가 나서야지 않으면 안될 일이 됐다. 의회 내 소수정당 의원 몇 사람으로 부패한 다수당의 횡포와 절대권력을 견제하기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지방선거가 끝난 후 단체장과 의회를 석권한 한나라당의 싹쓸이를 걱정하던 목소리가 공연한 정치공세가 아니었음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견제 없는 권력은 썩기 마련이라더니 견제 없는 질주가 사고를 불렀다. 의회 브레이크마저 파손된 상태라면 단체장의 질주를 막을 힘은 오직 시민들만 가지고 있다.
심재옥/전 서울시의원,진보신당 서울시당 정책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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