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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발레 '신데렐라', 부상 딛고 날아오르다(김리회)

한국 발레 '신데렐라', 부상 딛고 날아오르다

 
[오마이뉴스 곽진성 기자]

4월 초 국립발레단에서 만난 김리회 발레리나. "오랫동안, 그리고 진정, 무대를 즐기고 싶다"는 그의 말에서 발레에 대한 사랑이 엿보였다.
ⓒ 곽진성


김리회(22)는 국립발레단의 신성으로 떠오르는 발레리나다. 선화예중 졸업 후, 영재시험에 합격해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 이후 80대 1의 경쟁을 뚫고 19세의 어린 나이에 국립발레단에 입단했다. 불가리아 바르나 국제발레콩쿠르 2인무상(특별상-베스트커플상), 서울 국제 무용 콩쿠르 주니어 부분 1위, 2008 한국발레협회 신인상, 그리고 국립발레단 사상 최연소 전막 발레 <호두까기인형> 주역 등. 그의 이력은 화려하게 빛났다.


하지만 빛나는 성공 속 시련이 있었다. 2008년 스트레스 골절 부상으로 6개월 동안 무대에 설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재활 끝에 다시 무대에 섰다. 긴 시간, 무대에 서지 못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발레를 사랑하는지 알게 됐다는 김리회는 이제 또 다른 꿈을 꾼다. "오랫동안, 그리고 진정으로, 무대를 즐기고 싶다"는 것이다. 그의 바람에선 발레에 관한 진실한 사랑이 엿보였다.


#1. 줄리엣을 꿈꾼 발레리나


5살 때, 유치원에서 처음 발레를 배운 김리회가 발레를 전공하게 된 것은 당시 유치원 담임 교사의 적극적인 추천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그는 근성이 약하고, 욕심이 없었지만 발레에 관해서만은 달랐다. 발레를 배울 때면 누구보다도 더 열성적이고, 더 적극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섯살 때부터 발레를 시작했어요. 제가 근성이 약해서 무엇을 해내고자 하는 욕심이 별로 없었는데 유독 발레만은 그렇지 않았죠. 발레를 할 때면 마냥 즐거웠거든요.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지금껏 발레를 계속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연습 중인 김리회 발레리나, 이동훈 발레리노
ⓒ 곽진성

그래서일까? 취미 생활로 시작한 발레는 그 후 김리회의 인생의 중심이 된다. 선화 예술중에 입학하며 발레를 전공하게 된 것이다.


어린 시절 김리회는 친구들과 공연 보러 다니는 것을 좋아했는데 하루는 국립 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을 볼 기회가 있었다. 공연을 감상하던 그는 줄리엣 역을 맡은 김주원 발레리나, 그리고 김지영 발레리나를 보며 가슴 뛰는 감동을 받았다고 말한다.


"발레공연을 많이 보러 다녔는데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았죠. 줄리엣 역할을 맡았던 김주원 발레리나, 그리고 김지영 발레리나가 있는 발레단의 단원이 돼서 한 무대에 서고 싶었어요. 마음 속으로 꼭 그러겠다고 다짐을 했었어요."


동경하는 발레리나와 한 무대에 서고 싶다는 열망. 그것은 김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중학교 3학년을 마치고 영재 시험에 합격해 한국예술종합학교로 입학한 그 이면에는 그런 열망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17세의 어린 나이에 이뤄낸 대학 합격. 하지만 그의 부모는 '어린 자녀가 대학 생활을 잘해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했다. 그러나 김리회는 그런 걱정들을 기우로 만들며 즐겁게 대학 생활을 해나갔다.


"제가 나이가 어려서인지, 언니들이 더 잘 챙겨주고 그래서 좋았어요. 다만, 어린 나이에 대학에 가서 그런지 또래 친구들이 없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죠. 지금도 같이 영화 보러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언니나 오빠들뿐이랍니다(웃음)."


대학(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시절, 김리회는 국제 콩쿠르에 도전한다. 2004년, 제21회 불가리아 바르나 국제발레콩쿠르에 파트너 이현준씨와 2인무 분야에 출전한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이 대회의 경쟁자들은 쟁쟁했기에 김리회는 콩쿠르 수상에 대한 기대는 일찌감치 포기했다고 한다. 그래서 콩쿠르가 끝난 후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친구들과 불가리아 해변을 놀러 다녔다고. 그런데 숙소로 돌아온 그는 깜짝 놀랄 소식을 듣는다. 2인무상(특별상-베스트커플상)을 수상했다는 것이다.


"원래 수상자들은 갈라쇼를 준비해야 하는데, 저는 지레 수상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친구들과 불가리아 해변으로 놀러 갔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재밌게 놀다가 저녁 늦게서야 숙소로 들어왔어요. 그런데 글쎄, 대회 수상(특별상 2인무상- 베스트커플상)을 했다는 거예요. 너무 놀란 마음에 후회가 밀려오더라고요. 놀지 말고 갈라쇼 준비할 걸, 먹을 것도 조금만 먹을 걸 하는 생각이 머릿 속에 가득했죠."


예상치 못한 '국제 콩쿠르 수상'은 김리회에게 꿈을 향한 자신감을 갖게 해주었다.


#2. 발레, 운명이 되다


2005년 겨울, 한국예술종합학교 3학년이었던 김리회는 자신의 오랜 꿈인 국립 발레단 오디션에 지원했다. 2005년 열린 제2회 서울국제무용콩쿠르에서 주니어 부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던 그는 이미 세간의 주목을 받는 발레리나였다. 하지만 국립발레단 오디션에 합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단원이 되려고 모인 경쟁자만 무려 80여 명, 그 중 단 한명만이 국립발레단원이 될 수 있었다.


김주원 발레리나에게 지도를 받고 있는 김리회 발레리나
ⓒ 곽진성


연말 오디션 당일. 모두들 긴장된 표정으로 오디션 순서를 기다렸고 대기자들 중 한 사람인 김리회도 오디션 번호를 뽑았다. 그런데 번호 운이 없었던지 1번으로 오디션을 봐야만 했다. 첫번째로 오디션을 본다는 사실이 부담으로 다가올 법도 했지만 김리회는 담담하게 오디션 연기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제일 첫번째로 오디션을 봤어요. 오디션 연기를 끝내고 담담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죠. 그런데 며칠 뒤에 정단원이 되었다는 합격 축하 전화가 오더라고요. 평소에 잘 울지 않고 국제 콩쿠르에서 수상할 때도 울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왈칵 눈물이 나더라고요. 아마도 오랜 꿈을 이뤘기 때문에 그랬나 봐요."


김리회 발레리나는 스트레스 골절로 인한 부상을 극복하고 다시 무대에 섰다.
ⓒ 곽진성

오디션을 끝 마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김리회는 국립발레단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합격을 알리는 축하 전화였다. 갑작스런 전화에 그의 눈에선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꿈이 현실이 됐다. 당당히 국립발레단 단원이 된 것이다. 자신이 동경하던 발레리나와 한 무대에서 설 수 있다는 사실이 김리회에겐 감동으로 다가왔다.


"국립발레단에 입단하고 많이 놀랐어요. 모두들 엄청난 준비, 그리고 노력을 하는 거예요. 저는 연습을 별로 안했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 반성하는 계기가 됐죠."


입단 후, 그가 놀랐던 것은 선배 발레리나, 발레리노들의 춤에 대한 뜨거운 열정 때문이었다. 온종일 훈련에 몰두하는 선배들을 보며 김리회는 '끈기'가 약한 자신의 약점을 깨닫게 된다.


그렇기에 국립 발레단의 선배들과 함께 한 1년 이란 시간은 김리회에게 있어 발레에 대해 다시금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2006년 연말, 국립발레단에 입단한 지 1년이 지났을 때였다. 전막발레 <호두까기인형> 캐스팅을 확인하던 김리회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자신이 이번 공연의 여주인공 '마리' 역을 맡게 된 것이다. 이 놀라운 사실은 김리회뿐만이 아니라, 평단과 발레 관계자들에게 큰 관심을 끌었다. 국립발레단 사상 전막발레 최연소 주역이었기 때문이다.


"캐스팅 보드표를 봤는데 많이 놀랐죠. 감사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마음에 부담이 되기도 하고, 하지만 잘해낸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죠. 다행히 파트너 분이 많이 도와주셔서 잘 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호두까기인형> 공연에서 김리회는 긴장을 이기며 환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그래서일까? 연기의 끝에서 쏟아진 것은 박수 갈채였다. 평단은 그의 어깨에 '김주원의 뒤를 이을 재목'이라는 찬란한 날개를 달아줬다.


#3. 부상을 딛고 날다


<호두까기인형> 주역 이후, 기회는 계속 찾아왔다. 국립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 해외 공연 주역으로 김리회가 발탁되었던 것이다. 어릴적 김주원 발레리나의 줄리엣 역을 보며 꿈을 키워온 김리회로서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꼭 해보고 싶은 공연이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일까? 그는 이 환상적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2008년 2월, 갑작스럽게 찾아온 스트레스 골절 부상 때문이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정말 좋은 기회였죠. 만약 부상이 없었다면, 아파도 참고 할 수가 있었다면 꼭 해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배역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스트레스 골절 부상이 심해서 할 수가 없었어요. 3개월은 무조건 쉬라는 말이 떨어졌죠."


연습실에서 김리회 발레리나, 이동훈 발레리노
ⓒ 곽진성

발등, 스트레스 골절 부상이 그의 꿈을 가로막았다. 의사는 3개월 동안은 무조건 쉬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결국 김리회는 부상치료와 재활을 위해 잠시 무대에서 내려와야만 했다.

"처음 두 달 동안은 솔직히 좋았어요. 쉴 수 있었으니까요.(웃음) 영화도 보고, 놀러도 가고 즐겁게 보내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그 이후부터는 몸이 미치겠는 거예요. 그제야 깨달았죠. 아, 내가 발레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내가 발레가 아닌 무엇을 하고 있나, 하고요. 어서 무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무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재활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다시 무대에 설 수 있기까지 무려 반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김리회는 당시의 어려웠던 상황을 담담히 들려줬다.


"부상으로 근육이 동작을 기억하지 못했고 근력은 다 사라져 버렸었죠. 다시 처음부터 연습을 시작해야 했어요."


힘겨웠던 상황에서 힘이 되어준 것은, 그를 든든하게 뒷받침해주던 부모님과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국립발레단 동료들이었다.


"부모님은 부상을 당했을 때 누구보다 힘이 되어주셨죠. 그리고 발레단 선배 언니 오빠들도 얼른 이기고 무대로 올라오라는 용기를 줬어요. 그런 따뜻한 격려 때문에 힘을 냈던 것 같아요."



인터뷰의 끝에서 밝게 웃는 김리회 발레리나
ⓒ 곽진성

반년이란 긴 재활기간을 끝내고 김리회는 2008년 9월 <지젤>을 통해 무대로 복귀할 수 있었다.


지젤 역을 맡아 감동적인 연기를 선보인 그는 예전보다 한층 더 성숙해져 있었다. 진정 발레를 즐길 줄 아는 발레리나가 된 것이다. 2008 한국발레협회 신인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은 부상을 이겨낸 그에게 전해진 특별한 선물이었다.


"부상을 당하고서 나서 오래 무대에 있지 못하는 발레리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렇기에 부상을 극복한 후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앞으로 오랫동안, 그리고 진정, 무대를 즐기는 발레리나가 되고 싶다고 말이죠."


<지젤>의 지젤역을 통해 화려한 복귀식을 치른 김리회는 최근 <신데렐라>에서 멋진 모습을 선보였다. 그리고 2009년 4월에는 <해설이 있는 발레>로 무대에 서는 등 왕성한 활동을 진행해 나가고 있다.

이제 김리회에게 부상의 아픔은 과거의 추억일 뿐이다. 부상을 딛고 날아오른 발레리나 김리회는 이제 다시금 꿈을 꾼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빛나는 줄리엣 역을 향해, 그리고 무대를 즐길 줄 아는 진짜 발레리나를 위해, 김리회는 힘찬 발걸음을 진행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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