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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더분한 야산 어귀마다 요절한 시인의 추억이 오롯이…





수더분한 야산 어귀마다 요절한 시인의 추억이 오롯이…
경기 광명시 구름산·도덕산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광명시의 지하철 철산역에서 도보로 10여분이면 닿는 철산배수지 위에 위치한 도덕산 초입에 원추리가 봄내음을 한껏 머금은 채 연둣빛을 뽐내고 있다. 도덕산은 지금 철쭉과 산수유가 한창이다.

도덕산에 산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경기 광명시는 1970~1980년대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생겨난 도시다. 시의 북쪽에 잇닿아 있는 서울 구로구 개봉동과 가리봉동, 금천구 시흥동 등 이름만 들어도 옛 공단지역의 회색빛 전경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지금의 광명시야 깔끔한 아파트 단지와 타 도시에 뒤지지 않는 각종 문화·체육시설을 자랑하는 신도시가 됐지만, 1970~1980년대에는 공단의 폐수로 얼룩진 안양천과 안양 방면으로 널려 있던 포도밭, 여기저기 자리잡은 근로자들의 주택들이 이 도시의 모습이었다.

1981년에 시로 승격됐으니 그 이전에는 시흥군에 속했다. 산업화 과정에서 생겨난 대개 신흥도시들은 이렇다할 역사·문화유적이나 내세울 만한 자연의 휴식공간이 적다는, 한마디로 ‘삭막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 점에서 ‘광명시’하면 ‘시인 기형도’와 ‘구름산’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그것들이 왠지 옛 이 지역이 갖고 있던 삭막한 느낌을 희석시켜주기 때문인 것 같다.

3월6일 광명시 시민회관 소공연장에서는 올해 작고 20년을 맞는 기형도 시인의 추모행사인 ‘어느 푸른 저녁의 노래’가 열렸다. 시인을 잘 아는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이 지역 시민들이 주최해 더 뜻깊은 행사였다. 스물아홉의 짧지만 강렬한 생을 살다간 기형도는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이곳 광명시의 구름산과 안양천 사이에 있는 소하동에서 보냈다.

그의 데뷔작인 ‘안개’에 나오는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방죽 위로 걸어가는 얼굴들은 모두 낯설다” 등 시구 중에 ’샛강’과 ‘방죽’은 안양천변을, ‘얼굴들’은 그 부근 공단의 근로자들을 그린 것이다. 그의 다른 시 ‘포도밭 묘지’연작은 인근의 안양이 경인공업지대의 거점도시로 바뀌면서, 시인이 그 스산해진 장소에서 보낸 추억과 기억을 꺼내 보여주고 있다.

광명실내체육관 부근에는 지난 2006년 세워진 기형도 시비(詩碑)가 있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시장에 간 우리 엄마/안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로 시작되는 시인의 ‘엄마 걱정’이라는 시가 새겨져 있다.

아마 기형도 시인도 당시 삭막한 도시의 유일한 녹색공간이었으며 자신의 집이 있던 소하동과 지척인 구름산을 적지 않게 올랐으리라 생각된다. 이달 초 주말 구름산을 걸으면서, 어쩌면 이 능선길에서 시상(詩想)을 가다듬었을지 모를 기형도 시인을 떠올렸다.

구름산과 도덕산은 광명시의 중앙에 남북으로 걸쳐 있다. 광명시에서 안양천을 건너면 바로 화려한 관악산으로 이어지는 호암산 자락을 만날 수 있으나, 구름산과 도덕산은 비록 수더분한 야산에 불과하지만 이 지역 주민들에게는 고향마을의 뒷산처럼 편하고 부담없는 쉼터다. 휴일뿐 아니라 평일에도 가벼운 차림으로 찾는 이들이 많다.

구름산(237m)은 광명시에서 제일 높은 ‘주산’이다. 광명시에 따르면, 구름산은 원래 이 지역 아방리(阿方里)에 소재해서 ‘아방봉’ 또는 ‘아방산’이라 했다는데 조선후기에 구름속까지 산이 솟아있다 해서 구름산이라 부르게 됐다는, ‘근거도 없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이름의 유래가 전한다. 어쨌든 운산(雲山)이란 이름이 같이 불리는 것으로 미루어 아주 근래 지어진 이름은 아닌 듯하다고, 또 구름산이란 이름이 얼마나 좋은가.

이 산의 서쪽 기슭에는 조선 인조의 장자 소현세자의 빈(嬪)이자 고려 강감찬 장군의 19대 손인 민회빈(愍懷嬪)의 묘소인 ‘영회원’이 자리하고 있다.

구름산은 보통 하안1동 보건소입구(금당마을)에서 출발한다. 7호선 지하철 철산역에서 내려 3번이나 17번 버스를 타면 하안동 보건소 앞에 닿을 수 있다. 양쪽으로 나무들이 많은 느릿한 능선길을 1.3㎞ 정도 오르다 보면 조금 가팔라지면서 제법 옹골진 바위들이 버티고 있는 ‘돌산’이 나온다. 여기 설치된 전망대에 서면 동쪽에 관악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돌산에서 10여분 내리막길로 전진하면 안부에 가리대쉼터가 있다.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몹시 키가 크고 꼬불꼬불하게 자란 나무들이 서있는 길을 지나 승지골이 나오는데 현재 구름산터널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도로(노안로)를 건너면 밤일마을을 통해 도덕산으로 넘어갈 수 있는 코스다. 가리대쉼터에서 그냥 1㎞ 남짓 직진하면 산불감시탑과 ‘명상의 숲’을 지나 구름산 정상이다. 이곳에는 ‘운산정(雲山亭)’이라는 이름의 팔각정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선 안양시와 시흥시까지 눈에 들어온다.

정상에서 오던 방향에서 오른쪽으로 하산하면 소현세자빈의 묘소인 ‘영회원’과 노온저수지 방면이다. 오던 방향으로 계속 직진하면 가학산(215.9m)과 서독산(222.5m)까지 이어지는데 도덕산부터 출발해 서덕산까지 종주한다면 보통 5시간은 잡아야 한다. 대개는 구름산 정상에서 왼편 소하동으로 하산한다.

도덕산(198m)은 광명시의 광명동, 철산동, 하안동 일대에 걸쳐 있다. 도덕산은 한강의 지류인 안양천과 인접하고 서해로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에 자리한 독립봉이어서인지 삼국시대 백제의 것으로 추정되는 보루(작은 규모의 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옛날 이 산봉우리에 사람들이 모여 도(道)와 덕(德)에 대한 의견을 자주 교환했다고 하여 ‘도덕산’이라 불렸다는데, 경북의 경주와 대구, 경기의 안성과 충북의 음성 등지에도 같은 이름의 산들이 있다. 광명의 도덕산은 공원으로 조성돼 지역주민들이 많이 찾는다.

역시 철산역에서 도보로 10여분이면 철산동 철산배수지에 위치한 도덕산 들입목에 닿는다. 도덕산은 구름산에 비하면 더욱 평이하며 등산이라기보다는 산책로로 보면 될 듯하다. 700m 정도 완만한 능선길을 오르다보면 옛적 석회광산터가 나온다. 거기서 다시 300m 남짓 오르면 도덕산 정상이다.

오던 방향에서 왼편길로 하산해야 밤일마을을 지나 먼저 얘기한 도덕산 가리대쉼터로 접근할 수 있다. 두 산을 두루 둘러보며 3, 4시간이면 여유있게 종주할 수 있다. 이날 등반은 도덕산을 먼저 올라 구름산 정상을 만나고 다시 되돌아 나와 보건소로 하산했다.

글·사진 =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등산코스>

▲(구름산)보건소 입구→돌산→가리대쉼터→산불감시탑→명상의 숲→구름산정상→소하근린공원
▲(도덕산)철산배수지→송신탑→석회광산→도덕산정상→밤일마을
▲(도덕산-구름산)철산배수지→송신탑→석회광산→도덕산정상→밤일마을→가리대쉼터→산불감시탑→명상의숲→구름산정상→소하근린공원

<대중교통>

▲ 지하철 7호선 철산역에서 3번, 17번 버스로 하안동 보건소 하차 또는 철산배수지까지 도보로 갈 수 있다.


기사 게재 일자 2009-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