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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랐다. 다 올랐다. 국민 혈압도 올랐다"

  "사료 값이 올랐다."
  경기도 안성에서 젖소를 키운다는 김상일 씨의 말이다. 최근까지 7200원이던 사료가 금세 9800원으로 올랐다고 했다. 하지만 소 값은 오히려 떨어졌다.
 
  옆에 있던 사람이 한마디 했다. "비료 값은 더 올랐다." 지난해까지 6300원하던 비료가 올해에는 12000원이라고 했다. 그는 제주도 서귀포에서 감귤 농사를 짓는다. 비료 값만이 아니다. 농사짓는 데 필요한 경비가 모두 올랐다고 했다. "쌓이는 것은 빚뿐"이라는 말을 내뱉는 표정에서 한숨이 배어났다.
 
  이번에는 맞은편에 있던 대학생이 말했다. "등록금도 올랐다." 한 학기에 400만 원씩 내면서 굳이 대학을 다녀야 하나 싶다고 했다. "어차피 배우는 것도 없는데….차라리 등록금 모아서 장사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어디선가 툭 튀어나온 한마디. "장사가 쉬운 줄 아냐." 그리고 대화가 끊겼다. 22일 저녁 서울 청계천 광장의 풍경이다.
 
  '툭' 건드리기만 해도 터져 나오는 분노
 
  이날 이곳에서는 1700여 개 시민단체 및 온라인 모임으로 구성된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가 마련한 '제15차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이 집회에는 5000여 명이 모였다.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문화광장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과 한미 FTA에 반대하는 전국농민대회가 1만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그래서인지, 이날 촛불문화제 참가자 중에는 농민들이 많았다. 이들은 기자가 다가가 툭 한마디만 던져도, 격정적으로 대답을 쏟아냈다. 그만큼 쌓인 게 많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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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시안

  
▲ 5000여 명의 참가자들은 대부분 촛불문화제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프레시안

  여느 때와 달리, 대학생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그들도 속에 쌓인 게 많은 모양이었다. "20대는 10대와 달리, 취업에만 신경 쓰느라 사회 문제에 별 관심이 없다던데"라고 툭 던졌다.
 
  "여기 모인 사람들이 안 보이느냐. 꼭 그렇지만은 않다"라는 대답이 튀어나왔다. 말해놓고서도 조금 머쓱한 듯했다. 현재 대학 휴학생이라는 그는 요즘 흔치 않은 '운동권 학생'이다.
 
  "매년 오르기만 하는 등록금 때문에 학생들의 불만이 목에까지 차 있다. 단지 분노와 답답함이 표출될 곳을 찾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대학생들. 20대 전체를 싸잡아서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고, 취업 준비에만 몰두한다"고 평가하는 분위기에 대해 반발하는 이들도 꽤 있었다. ⓒ프레시안

  그를 뒤로 하고, 광장을 거닐다 만난 대학생 김진수 씨는 '운동권'과 아주 거리가 멀다. 방송국 피디가 꿈이며 국문과 4학년인 그는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찍었다고 했다.
 
  "등록금도 문제지만, 제일 큰 문제는 결국 경제죠"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그 경제가 지금 엉망이잖아요. 자기가 대통령이 되기만 하면, 주가지수가 3000까지 뛸 거라더니…."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쏟아낸 말이다.
 
  '2MB 블루스' 울리는 흥겨운 축제
 
  물론 이렇게 목에 핏대가 불거진 이들만 이날 광장에 모였던 것은 아니다. "오, 브라질에 온 것 같아. 딱 내 분위기야." 발갛게 상기된 표정으로 끊임없이 몸을 흔들던 한 30대 직장인의 말이다. 그는 소라 모양의 구조물 근처에 마련된 무대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온몸으로 즐겼다. 그는 대학 시절 민중가요 노래패 활동을 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에 부르던 노래가 싫다고 했다. 그가 원하는 분위기는 브라질 삼바 축제처럼 격정적이면서도, 동시에 저항의 열정이 담겨 있어야 한다.
 
  마침 무대에서는 록 밴드 '더문(Band The Mu:n)'이 부르는 '2MB 블루스'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제가 원하는 게 딱 이런 분위기예요." 주위를 돌아보니, 그만 몸을 흔드는 게 아니다. 참가자들이 일제히 일어섰다. 이 노래 가사는 이렇다.
 
  "오오 워워, 너나 드셈 많이 드셈…부시도 안 먹는 쇠고기 너나 많이 즐쳐 드셈…." 이런 노래에 맞춰 덩실거리는 이들의 표정에서 신명이 어른거렸다.
  
▲ 교육당국의 통제 탓인지, 교복을 입은 참가자의 수가 많지 않았다. ⓒ프레시안

  "더 이상 우리를 열 받게 하지 말라"
 
  다들 쌓인 게 많은 이들이 모인 자리였지만, 집회는 이렇게 흥겨운 분위기로 끝났다. 밤 10시 10분께, "광우병 쇠고기 굴욕 협상"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찢는 퍼포먼스를 끝으로 집회를 마치고 흩어지는 이들 중 한 명에게 다가갔다. 그의 표정에서 흥겨운 기색이 싹 가셨다. 기자가 던진 질문 때문이다.
 
  "오늘 이명박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했잖아요…."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대답이 돌아와 박혔다. "그게 어떻게 사과입니까. '대국민 염장질'이지. 상대방의 이야기를 '괴담'이라고 몰아붙이면서 하는 사과도 있나요. 사과 안 해도 좋아요. 대신, 국민을 열 받게 하지나 말았으면 좋겠어요."
 
  비료 값, 사료 값, 등록금만 오른 게 아니라, 국민의 혈압도 꽤 올랐다는 이야기다.
  
▲ 보건의료 부문을 영리사업화하려는 정책에 대한 반감도 거셌다. ⓒ프레시안

  
▲ '공공부문 민영화'에 대한 불안감은 이날 집회 참가자들에게 짙게 드리워져 있던 정서다. ⓒ프레시안

  
'와규'는 미 쇠고기보다 100배쯤 비싼데...
 
  이날 집회에는 외국인도 참가했다. 그 가운데 보건의료노동조합의 초대를 받아 최근 한국을 방문한 일본 자치노조(지방자치단체 공무원 노동조합) 조합원들을 만났다. 이 단체 소속 보건 의료 부문 간부인 야스노리 후지카와 씨, 테루요키 오다 씨 등과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다.
  
▲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일본 자치노조 관계자들. ⓒ프레시안

  - 일본에서도 과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가 큰 논란이 됐다.
 
  그렇다. 논란 끝에 광우병 위험 물질(SRM)이 있는 부위의 수입을 금지했다. 하지만 여러 차례에 걸쳐 '뼈 있는 쇠고기'(SRM이 포함된 쇠고기)가 적발됐다. 그리고 그때마다 수입이 전면 중단됐다.
 
  일본 교원 노동조합이 광우병 위험 물질이 포함된 쇠고기 수입 반대 운동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아이들의 미래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시민사회단체, 노동조합 등 역시 적극적인 반대운동을 펼쳤다. 하지만 이런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시민들 개개인이 광우병의 위험에 대해 깊이 깨닫는 게 가장 중요하다.
 
  -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검역 조건을 낮추는 결정을 하면서, '와규(和牛, 일본에서 키우는 소)'의 예를 소개했다. '와규'는 전 세계 부자들에게 매우 비싼 값에 팔린다. 한국 축산농가 역시 '와규'처럼 고급 소를 키우라는 뜻이다. 일본인으로서 듣기에 이런 주장이 현실성이 있다고 보나?
 
  '와규'는 무척 비싸다. 미국산 쇠고기보다 100배쯤 비싸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패스트푸드, 싸구려 음식 등에는 와규가 들어가지 않는다. 대신 미국산 쇠고기가 쓰인다. 가난한 사람들은 아무래도 와규보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안전한 쇠고기'를 먹으려면 돈을 많이 내라는 뜻인데, 글쎄 잘 모르겠다.
 
  모든 사람이 '와규'처럼 질 좋은 쇠고기를 먹을 수 있다면 좋겠지. 하지만 그러려면 축산농가에 많은 배려를 해야 한다.
 
  -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을 보면, 누가 떠오르나.
 
  우선 떠오르는 사람은 고이즈미 총리다. 그는 공공 부문을 축소하여 서민의 삶을 황폐화시켰다. 공공부문의 무리한 민영화가 낳을 부작용을 일본 사회는 먼저 겪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사례를 따르지 않으면 좋겠다.
 
  - '촛불집회' 참석은 처음일 듯하다. 소감이 어떤가?
 
  일본에는 축제는 있어도, 정치적 시위는 거의 없다. 그래서인지 조금 낯설지만, 참 좋다. 정치적인 열기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느낌이다. 이런 열기가 시들어 있는 일본사회에도 좋은 자극이 될 것 같다. 또 광우병의 위험을 나라밖으로 널리 알리는 데에도 도움이 될 듯하다.
 
 
   
 
  성현석/기자